양귀비는 모르핀, 헤로인, 그리고 다른 아편성 약물에 원료를 제공하는 꽃입니다.
원산지는 소아시아이고 최대 불법 공급원은 아프가니스탄입니다.
하지만 터키, 스페인, 그리고 특히 오스트레일리아 태즈메니아 (세계 최대 합법적 생산지) 의
광활하고 잘 통제된 밭에서는 제약 원료로 재배되기도 합니다.
허리 높이까지 자라고 , 톱니 모양의 청록색 잎과 과육성 줄기를 가진 양귀비는 친숙하고
무해한 주황색 사촌, 개양귀비와 꽃의 구조는 비슷하지만 훨씬 튼튼합니다.
꽃잎은 연한 라일락색 또는 자주색이고 , 중심으로 갈 수록 색이 짙어지며
구겨진 티슈처럼 잘 찢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조각된 항아리 모양의 씨앗 꼬투리에는 쪼글쪼글한 뚜껑이 달려있는데
여기에서 작고 검은 씨앗을 후추처럼 뿌려대기도 합니다.
씨앗에는 먹을 수 있는 기름이 들어있고, 꿀과 함께 가루를 내어 맛있는
페이스트리의 속을 채울 수도 있습니다.
종종 빵을 장식하는 용도로 사용되며 , 양귀비 씨가 들어있는 베이글을 섭취하고 일주일 뒤면
약물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일 수 있지만 씨앗에 들어있는 아편제의 양은
생리학적 효과를 일으킬 만큼 많지는 않습니다.
아편의 성분인 모르핀은 양귀비가 방어용으로 생산한 물질이지만 ,
인체에서는 진정 효과를 주고 체내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엔도르핀을
모방하므로 강력한 진통 효과는 물론이고 종종 극도의 희열감을 줍니다.
그러나 과다복용하면 호흡이 느려지면서 질식하여 사망할 수 있습니다.
모르핀 외에도 아편에 들어 있는 다른 물질들은 근육 이완제 , 소염제 , 기침 억제제
기능을 하며 그 자체로도 매우 가치고 있고, 다른 많은 약물을 제조하는데 사용되기도 합니다.
아편은 적어도 7천년동안 효과적인 진통제로 사용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불안, 불면증, 통증 치료제로 유명했지만 그 위험성도 잘 알려져 있어서
양귀비는 꿈의 신 모르페우스와 잠의 신인 히프노스 , 죽음의 신인 타나토스에게 바쳐진 꽃이기도 합니다.
강한 중독성이 알려졌음에도 19세기에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아편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허용되었고 ,
사람들은 호화로운 [오리엔탈] 아편굴에서 연기를 피우거나 알코올 음료에 녹인 로더넘을 복용하기도 했습니다.
에드거 앨런 포, 그리고 특히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 같은 작가들이 아편 애호가들로 유명합니다.
실제로 콜리지의 [쿠블라 칸]은 로더넘을 복용한 상태에서 작업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
창작의 절정기에는 일주일에 수백 밀리리터라는 불가능한 양을 복용했다고 합니다.
18세기 19세기에 아편은 중국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고,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자
동인도 회사 (사실상 영국 정부의 무역 기관)가 끼어들어 중국의 차, 비단, 향료 대금을
지불하는 대신 영국령 인도의 플랜테이션에서 아편을 수출하였습니다.
중국 황제들은 아편이 사람들을 중독에 빠트리고 경제와
공공 도덕을 훼손한다고 판단하여 수입을 제한하였지만 당시 세계에서
가장 돈이 되는 무역 상품이였던 아편은 빈틈없이 조직된 네트워크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밀수되었습니다.
1838년 , 중국 황제가 아편을 단속하고자 수 톤의 아편을 압수해 바다에
버린 일을 빌미로 영국군은 제 1차 아편 전쟁을 일으켜 중국 항구를 봉쇄하고 폭격했으며 ,
결국 중국 황제는 불명예스럽게 굴복하였으며 이어지는 합의에서
중국은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고 홍콩을 영국에게 양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편 무역은 다시 활기를 띠면서 재개되었고 , 19세기 중반에는 중국의 남성인구
가운데 4분의 1이 정기적인 아편 사용자였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1856년 제 2차 아편 전쟁으로 마약 거래가 확장되고 시장이 더욱 개방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편 전쟁을 영국의 황금기로 볼 수는 없습니다.
아편 시장을 극대화하기 위한 19세기의 자국 이익 중심 정책은
현대 미국에서도 불편한 유사점을 보이기도 합니다.
제약 회사에 독려를 받은 의사들이 이 유혹적이고 거부할 수 없는
식물에서 파생된 오피오이드 (마약성 진통제)를 과도하게 처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